조지아협의회 침례교 세미나

조지아 협의회 침례교 세미나

날짜: 2020106()

주제: “침례교단의 탄생으로 본 영적 DNA”

강사: 최정인 교수

강의목적: 17세기 영국 일반 침례교회와 특수침례교회의 탄생 역사를 기억함으로 침례교회의 정체, 자부심, 비전을 명확하게 합니다.

 

2020106일 조지아 협의회 교육분과위원회 (나기수 목사)에서는 최정인교수를 모시고 18명의 목사님들이 참여한 가운데 17세기 일

반침례교회와 특수침례교회의 탄생 역사를 짧은 시간을 통해 이해한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인물론적 중심으로 최정인 교수가 집필한 

침례교의 역사와유산에 일부분인 17세기 영국 일반 침례교회와 특수침례교회의 탄생 역사 배경을 3시간 정도나누고 50분은 Q&A 시간

을 가졌습니다.

 

먼저 최정인 교수의 강의록을 참고하여 타 교파와 침례교의 큰 차이점을 정리한다면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종교의 자유를 옹호한 것으로 국가가 신앙적인 문제에 관여하거나 강요할 수 없다며, 꾸준하게 국가교회 체제를 반대하며, 신앙의 자유를 옹호하였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정교(정치와 종교) 분리의 원칙 혹은 국종(국가와 종교) 분리의 원칙이 확립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본 강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침례교의 신앙이 하루아침에 정립되어 세워진 것이 아닌 침례교 믿음의 선배들이 성경을 근거한 신앙적 확신과 그에 따른 순교적 결단을 통해 오늘날 침례교의 모습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영국 일반 침례교회를 세운 존 스마이스의 신앙의 개혁적 태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그의 생애 동안 자신이 최종적 진리를 발견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언제라도 성경과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더 새로운 빛(further light)을 비추어주시면, 그의 신학적 입장을 바꿀 수 있다며 자신의 입장과 태도를 변호하였다.”

 

특히 초기 침례교인들은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두고 국가의 권력, 당시 종교적 분위기, 시대적 상황, 인간관계등에 타협하지 않고, 성경적 가치안에서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였음을 보게 됩니다. 이 땅에 완전한 교회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불안전한 인간들이 존재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경적 가치안에서 늘 개혁해야 합니다. 개혁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기본과 본질로 돌아가는 것으로 개혁의 기준은 오직 성경임을 믿습니다. Back to the Bible, Back to the Basic”

 

특히 최정인 교수의 강의 특징은 해석되지 않은 1차 자료(primary sources)를 통해 그 당시 배경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하고, 강의자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시대로 돌아가게 하는 착각을 줄 정도로 정확한 자료들을 제시함으로 독자들이 스스로 비평하고, 해석할 수 있게 하는 자료의 정확성과 풍성함이 있는 소장 가치가 있는 논문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연구한 자료들을 아낌없이 나눠 주시고, 침례교 교회사 학자로서 한 분야에 최선과 열정을 다해 수고하고 섬기시는 모습에 감사를 표하고, 찬사를 보냅니다.

 

-강의 요약-

1 장 영국 일반침례교회의 탄생(The Rise of English General Baptists)

 

I. 침례교회의 관점(Perspectives)

1. 침례교회는 전 그리스도교 역사 특히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의 유산을 이어 받았다.

2. 침례교회는 16세기 로마 가톨릭교회에 반대하여 일어난 개신교(Protestants)에 속한다.

3. 침례교의 교회론은 아나뱁티스트들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아나뱁티스트는 아니다.

4. 침례교는 많은 신학을 영국의 종교개혁을 통해 이어받았으나, 성공회는 아니다.

5. 초기 침례교 지도자들은 청교도나 분리주의자 출신이지만, 그 일부를 변화시킴으로 독특한 신학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침례교도들은 청교도나 분리주의자들에게서 나왔지만, 청교도나 분리주의자들이 아니다. 침례교회는 17세기 초반 영국에서 탄생한 하나의 독특한 교파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행습을 신약성서에 두고, 오직 성서를 최고의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정하였다.

 

6. 이 독특한 신앙의 형성 과정에서 두 집단이 출현하였다. 첫 번째 출현한 집단을일반침례교회”(General Baptists)라고 하고, 두 번째 출현한 집단을특수침례교회”(Particular Baptists)라고 한다.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1) 공통점

() 두 집단 공히 회중 정체를 취했다.

() 두 집단 공히 중생한 신자들로 구성된 교회를 이루었다.

() 두 집단 공히 신자의 뱁티즘을 시행했으며, 그 방식은 침수 침례였다.

() 두 집단 공히 유아세례를 거부하였다.

() 두 집단 공히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였다.

 

특히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종교의 자유를 옹호한 것은 침례교회가 타 교파들과 확실하게 다른 점이었다. 이들은 국가가 신앙적인 문제에 관여하거나 강요할 수 없다며, 꾸준하게 국가교회 체제를 반대하며, 신앙의 자유를 옹호하였다. 그리하여 정교(정치와 종교) 분리의 원칙 혹은 국종(국가와 종교) 분리의 원칙이 확립되었다.

 

II. 영국 일반침례교회(English General Baptists)의 탄생

 

1. 존 스마이스(John Smyth, 혹은 Smith c.1570-1612)를 통해 세워졌다. 스마이스의 논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a. 영국 국교회의 유아세례에 근거하였던 자신들은진정한 교회가 아니었다.

b. 진정한 교회는 신자의 뱁티즘에 근거해야 한다.

c. 누군가는 신자의 뱁티즘에 의한 진정한 교회를 시작해야 한다.

d. 우리가 신자의 뱁티즘을 새롭게 시행함으로써, 진정한 교회를 시작할 수 있다.

 

스마이스는 그의 생애 동안 자신이 최종적 진리를 발견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언제라도 성경과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더 새로운 빛(further light)을 비추어주시면, 그의 신학적 입장을 바꿀 수 있다며 자신의 입장과 태도를 변호하였다. 스마이스의 신학과 교파적 정체의 변화를 정리해보면 알 수 있듯이 그의 신학적인 변화는 한 방향으로 가는 일관성이 있었다.

 

2. 토머스 헬위즈

토머스 헬위즈 는 영국 땅에 최초의 침례교회를 세웠으며,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다 순교한 침례교 최초의 순교자이다.

() 토머스 헬위즈(Thomas Helwys)와 존 머튼(John Murton)을 포함한 10명 미만의 소수의 무리들은 자신들이 받은 뱁티즘이 정당하다고 보며, 스마이스의 메노나이트 가입을 정죄하여, 그들을 자신들의 교회로부터 출교하였다.

() 토머스 헬위즈와 10명 미만의 소수의 회중은 존 스마이스와 다수의 회중과 함께 세운침례교회의 정체성을 유지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을 표현하기 위하여 1611에『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거하는 영국인들의 신앙의 선언』(A Declaration of Faith of English People Remaining at Amsterdam in Holland)라는 신앙고백서를 발표하였다. 이는 침례교회 역사에서 최초의 침례교회 신앙고백서로 인정된다.

 

() 스마이스와 헬위즈는 참된 교회와 그 계승은 로마 가톨릭교회에 의해 단절되었다는 점과 신약성서와 신자의 뱁티즘을 근간으로 한 참된 교회로의 회복(restitution)이 가능하다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되었다. 헬위즈는 메노나이트의 평화주의(pacifism)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민 정부, 사형제도, 무기 사용 등을 거부하였고, 일부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호프만식 기독론을 갖기도 하였다.

토머스 헬위즈는 저서를 통하여 영국 국교회의 유일한 수장이었던 국왕 제임스 1세에게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고 청원하였다.  그러나 제임스 1세는 2주 후에 토머스 헬위즈를 정치, 사회, 종교적으로 위험한 인물로 여겨서 그를 체포하여 악명 높은뉴게이트 감옥’(The Newgate Prison) 수감하였다. 헬위즈는 그 감옥에서 1616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여겨진다. 영국 땅 최초의 침례교회이며 일반침례교회인 작은 무리의 성도들을 인도하는 일은 이제 존 머튼(John Murton)의 어깨 위에 떨어졌다.

 

3. 존 머튼(John Murton, ?-1626)

(1) 존 머튼은 하층민 출신으로서 상업에 종사하였으며, 한 농부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는 게인스보로우에서 스마이스가 세운 분리주의교회의 일원이 되었다가, 그 회중과 함께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다. 스마이스와 헬위즈가 결별할 때, 헬위즈의 편에 섰으며, 1611년에 헬위즈와 함께 영국 런던으로 돌아왔다.

(2) 그는 1612년 헬위즈가 투옥된 후 스피탈필드에 있던 영국일반침례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존 머튼도 역시 토머스 헬위즈처럼 종교의 자유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또한 그도 일반 속죄설을 신봉하였다.

(3) 존 머튼도 역시 1615년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머튼은 계속해서 서문에서누구든지 그가 가진 종교가 참된 것이든 거짓된 것이든 간에 종교적인 문제로 인하여 핍박을 받아서는 안 된다.”(that no man ought to be persecuted for his religion, be it true or false.)고 주장하였다.

(4) 존 머튼은 1626년경에 감옥에서 사망했다. 그러나 이미 그 당시에 영국에는 다섯 개의 일반침례교회가 있었고, 침례교도의 수는 150여명에 이르렀다.

 

4. 토머스 그랜쌈(Thomas Grantham, 1634-92)

(1) 토머스 그랜쌈은 15세에 회심하여, 19세였던 1652년에 링컨 주의 보스턴(Boston)에서 침례를 받았다. 그랜쌈은 1656년에노쓰 엘름 채플’(North Elm Chapel)의 목사가 되었다. 그는 침례교도로서의 그의 신앙과 행습으로 인하여 수차례 투옥되었다. 영국 국왕 찰스 2(Charles II)에게 2만여 명의 성도가 동의하여 보내어진 청원서를 작성한 사람이 그랜쌈이었다.

 (2) 그랜쌈은『원시 그리스도교』(Primitive Christianity)라는 저서를 통하여 침례교회의 신학과 예배를 다루었다. 그는 찬송가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여겨 예배에 사용하는 것을 반대했다.

(3) 그랜쌈은 1666년에 담임목회 직을 사임하고메신저’(messenger)로 임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링컨 주(Lincolnshire), 노포크(Norfolk) (county), 워위크 주(Warwickshire) 등에 교회를 세우는 총감독(general superintendence)으로서 일하였다. 말년에 그랜쌈은 노르위치(Norwich)에 정착하였고, 그곳에서 1692 1 7일 사망했다.

 

2 장 영국 특수침례교회의 탄생(The Rise of English Particular Baptists)

 

I. 서론

1. 영국 침례교회의 두 번째 집단은 1638년에 일어난 칼뱅주의 침례교회로서 특수침례교회라고 한다. 영국 일반침례교회와 영국 특수침례교회는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장소에서 다른 배경으로 탄생하였다. 이 둘은 서로 어떠한 연관도 없이 탄생하여서 250여 년 동안 다른 길을 걸었다.

 

2. 여기에서특수’(particular)라는 말의 의미는제한속죄설’(limited atonement theory) 혹은특수속죄설’(particular atonement theory)을 의미한다. , 이들은 그리스도는 오직 택자만을 위하여 죽으셨다고 믿었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일반속죄설을 믿는 아르미니우스주의는 그리스도는예외 없이 모든 사람”(all without exception)을 위하여 죽으셨다고 믿는다.

 

3. 특수침례교회는 1616년 헨리 제이콥(Henry Jacob)이 런던 템즈(Thames)강 남쪽의 싸우스와크(Southwark)에 세운 독립교회(Independent church) 혹은 반()분리주의교회(semi-Separatist church)로부터 기원하여 1633(혹은 1638)에 탄생하였다.

 

4. 교회론 중심의 용어 및 개념 정리

(1) 청교도(Puritans): 칼뱅주의 + 장로 정체 주장

(2) 독립주의들(Independents): 칼뱅주의 + 회중 정체 주장

(3) 분리주의자들(Separatists): 칼뱅주의 + 회중 정체 주장

 

그러나 신학적으로 칼뱅주의에 기초한 이들의 영국 국교회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1) 청교도들: 영국 국교회는 진정한 교회이지만 타락했다(true but corrupt).

(2) 독립주의들: 영국 국교회는 진정한 교회이지만 타락했다(true but corrupt).

(3) 분리주의자들: 영국 국교회는 완전히 타락했고, 거짓된 교회다(totally corrupt and false).

 

5. 특수침례교회는 향후 250여 년 동안 영국과 미국 침례교회의 전통을 주도하게 된다.

(1) 영국: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특수침례교회라는 용어가 공식화되고 계속되었다.

(2) 미국: 미국에서도 17세기부터특수침례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두 흐름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하나로 통합되었다.

(3) 일반침례교회와 특수침례교회의 통합: 1611년에 탄생한 영국 일반침례교회와 1638년에 탄생한 영국 특수침례교회는 1891년에 영국침례교연맹(Baptist Union of Great Britain)을 통하여 하나로 통합되었다. 이렇게 아르미니우스주의 침례교회와 칼뱅주의 침례교회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침례교의 전통 안에는 이 두 가지 신학이 함께 흐르게 되었다.

 

II. 영국 특수침례교회(English Particular Baptists)의 탄생

 

1. 헨리 제이콥(Henry Jacob, 1563-1624): 독립교회(An Independent Church) 목사

(1) 헨리 제이콥은 생애 동안 한 번도 침례교도가 된 적이 없지만, 그가 세우고 목회하였던 교회에서 초기의 특수침례교회들이 탄생하였기 때문에 그의 사역과 사상은 침례교의 역사에 매우 중요하다.

그는 분리주의자들이 영국 국교회에 대하여 가지고 있었던 태도를 독단적이고 극단적인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 1540-1633), 헨리 바로우(Henry Barrow, c.1550-93), 존 그린우드(John Greenwood, d.1593 4 6), 프렌시스 존슨(Francis Johnson, 1563-1618), 존 스마이스(John Smyth, c.1570-1612) 등 분리주의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교회론과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교회론은 독립주의(Independent) 혹은 반()분리주의(semi-Separatism)로 불린다. 제이콥은 1597년에 영국으로 돌아왔다.

 

(3) 1599년에 제이콥은 암스테르담에 분리주의 교회인고대교회”(Ancient Church, 1597)를 설립한 프렌시스 존슨과 서신 교환을 통하여 토론을 하였으나, 그의 교회론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존슨과의 서신을 모아서『영국 교회들과 사역을 위한 옹호』(A Defense of the Churches and Ministry of England, 1599)를 출판하였다. 그의 영국 국교회에 대한 입장은진정한 교회이지만 타락했다”(true but corrupt)는 것이었다.

 

(4) 1603년에 제이콥은 청교도들이『일천인 청원서』(Millinery Petition)를 제임스 1세에게 제출하는데 가담하였다. 이는 청교도들이 제임스 1세에게 교회의 개혁을 요구한 청원서이었으나, 그 모든 요구사항들은 거부되었고, 청교도들의 소망은 좌절되었다.

 

(5) 1604년에 제이콥은 영국 국교회의 개혁을 촉구하는『영국에 있는 우리의 교회들을 개혁할 필요성을 입증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 근거들과 뛰어난 사람들의 증언』이라는 저서를 출판하였다. 그는 이 저서를 통하여 국가교회가 아닌 자발적으로 모이는 자유교회의 개념을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비국교도적(dissident) 사상의 표현으로 체포되어 1605년에 투옥되었다. 8개월의 수감 생활 이후, 결국 제이콥은 더 이상 이 저서를 확산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야 풀려나게 되었다.

 

(6) 제이콥은 1605년 다시 네덜란드로 추방되어 질랜드(Zeeland) 지방의 미들부르크(Middleburg)에서 영국 상인들을 중심으로 한 회중을 구성하여 목회하였다. 이 교회의 중심적인 성향은 분리주의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독립주의(non-Separatism Independent)의 입장이었다. 1605년 제이콥은 이곳에서 그의 성도들과 함께『거짓되게 청교도들이라 불리는 영국의 많은 충성스러운 신복들이 존엄하신 왕께 드리는 세 번째 겸허한 청원』(A third humble Supplication of many faithful subjects in England falsely called Puritans directed to the King's Majesty)을 저술하였다. 그들은 이 저술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그들의 교회론을 발표하였다.

 

 (12) 1622 59세의 제이콥은 일부 성도들을 데리고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버지니아 식민지에제이코보폴리스’(Jacobopolis)라는 종교 공동체를 건립하였다. 제이콥은 1624년 제임스타운(Jamestown) 근처에서 사망하였다. 제이콥은 회중교회의 창시자이며, 종교적 관용에 대한 주요한 유산을 남겼다.

 

(13) 제이콥과 그 이후의 JLJ 교회의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다.

() 헨리 제이콥(Henry Jacob): 1616-22까지 사역, 신대륙 버지니아(Virginia)로 이민.

() 존 래쓰롭(John Lathrop): 1624-34까지 사역, 신대륙 보스턴(Boston)으로 이민.

() 헨리 제시(Henry Jessey): 1637-39까지 사역. 그가 사역할 때 JLJ 교회가 둘로 분열되어 특수침례교회와 회중교회가 됨. 제시 자신은 특수침례교도가 되어, 특수침례교회를 설립함.

 

2. 존 래쓰롭(John Lathrop, 1584-1653): JLJ 교회의 두 번째 지도자

(1) 존 래쓰롭은 1584 12 20일 요크 주(Yorkshire)의 이튼(Etton)에서 출생하였다. 제이콥의 사상을 이어받아 이 교회의 후계자가 되어 1624-34년까지 약 10년 동안 목회하였다. JLJ 교회는 래쓰롭이 목회하는 이 기간에 성장했으나 몇 번의 분리가 있었다결국 1630년에 더퍼(Mr. Dupper)를 위시한 분리주의적 성향이 강한 12명 정도의 소그룹은 교회를 탈퇴하여 분리주의교회를 세웠다. 그들이 거부한 것은 거짓된 교회였던 영국 국교회에서 뱁티즘을 받는 것이었다. , 그들이 문제를 삼은 것은 영국 국교회의 뱁티즘의 양식(세례)이나 대상(유아)이 아니었다. 그들이 문제를 삼은 것은 영국 국교회의 사제들에게 뱁티즘을 받는 것이었다. 그들은 영국 국교회를 거짓된 교회로 인정하여 거짓된 교회의 사제들의 손에 뱁티즘을 받기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5. 리처드 블런트(Richard Blunt): 침수 침례의 도입

(1) 리처드 블런트는 1633년 새뮤얼 이튼(Samuel Eaton)과 함께 JLJ의 교회에서 분리해서 나온 17인들 중의 하나였다.

(2) 블런트는 뱁티즘은 그 대상이신자의 뱁티즘일뿐 아니라, 그 방식이침수 침례’(baptism by immersion or dipping)이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침수 침례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부활하는 복음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통해 뱁티즘의 형식은 물속에 몸을 담그는 것이 되어야만, 장사와 부활을 상징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6. 존 스필스버리(John Spilsbury)

(1) 존 스필스버리에 대한 기록은 JLJ 교회로부터 1638 6명의 회원이 분리해서 존 스필스버리의 교회에 합류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JLJ 교회의 회의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2) 최소한 1638년 스필스버리는 신자의 뱁티즘, 회중 정체, 칼뱅주의 신학, 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영국 특수침례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3) 블런트는 침수 침례의 회복을 위해서 역사적 계승을 고려했다. 그러나 스필스버리는 블런트의 네덜란드 여행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스필스버리는 메노나이트들에게 계승을 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신약성서가 부여한 권위에 입각해서 누구라도 침수 침례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 “시작이 있으려면 누구라도 처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4) 그 이후 스필스버리는 20년 동안 특수침례교회의 지도적 목사가 되었다.

 

7. 핸서드 놀리스(Hanserd Knollys, c.1598-1691)

(1) 핸서드 놀리스는 1598년경에 링컨 주의 콱크웰(Cawkwell) 마을에서 태어났다. 핸서드 놀리스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케더린 홀(Catherine Hall, 1473)에 진학하여 청교도 사상을 갖게 되었다. 영국 국교회 사제가 되어 여러 곳에서 사역을 하였지만, 청교도 사상으로 인하여 영국 국교회에 대하여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1631년 사제직을 사임하고, 엔 체니(Anne Cheney)와 결혼하였다. 그는 또한 자신의 구원을 행위에 근거하였지, 진정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신뢰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정한 회심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여러 곳을 순회하며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설교를 하였다.

 (2) 그는 신대륙에서 유아세례에 대한 정당성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신대륙에서 그는 영국에서 온경건한 아나뱁티스트로 비쳐졌다. 신대륙의 몇몇 교회에서 사역하는 동안 그가 신자의 뱁티즘을 시행했는지는 불확실하다.

 

(3) 이때부터 놀리스는 JLJ 교회에 합류하였고, 뱁티즘에 대한 논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새로 태어난 아이에 대한 유아세례가 성경적인 분명한 근거가 없다며 거부하였다. 결과적으로 다시 한 무리의 성도들이 오직 신자의 뱁티즘만이 성경적인 근거가 있다며 JLJ 교회에서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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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GA 2020년 조지아 지방회 제 31차 정기총회 소집 공고 안내 드립니다. 이재위 2020.10.28 11860
49 GA 메이콘한인침례교회 박영환 형제 안수집사 임직식 안내입니다. 이재위 2020.10.27 13738
열람중 GA 조지아협의회 침례교 세미나 이재위 2020.10.09 13810
47 GA 조지아 협의회 8-9월 뉴스레터 이재위 2020.10.01 12639
46 GA 조지아주 메이콘 한인침례교회 박영환 형제 안수집사 시취 결과 안내입니다. 이재위 2020.09.29 14567
45 GA 조지아 지방회 침례교회사 온라인 세미나안내 이재위 2020.09.23 13322
44 GA 조지아주 에덴스 한인침례교회 김아브라함 전도사 목사 안수식 댓글+1 이재위 2020.08.04 16777
43 GA 존경하는 조지아 협의회 선배 목사님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이재위 2020.07.31 15060
42 GA 조지아 협의회 7월 뉴스레터 이재위 2020.07.28 13218
41 GA 에덴스 한인침례교회 김아브라함전도사 목사 안수식 안내 이재위 2020.07.26 14779
40 GA 조지아 협의회 김아브라함 전도사 시취보고입니다. 이재위 2020.07.24 16536
39 GA 6월 조지아 협의회 뉴스레터 입니다. 이재위 2020.06.30 13663
38 GA 조지아 협의회 5월 뉴스레터 이재위 2020.05.31 14195
37 GA 조지아 협의회 5월 온라인 기도회 모임 소식입니다. 이재위 2020.05.26 13586
36 GA 조지아 협의회 5월 온라인 기도회 광고 이재위 2020.05.04 14125
35 GA 4월 조지아협의회 뉴스레터 이재위 2020.05.01 14191
34 GA 조지아 협의회 4월 첫 “ Gospel-19 온라인 기도회"를 은혜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이재위 2020.04.30 14383
33 GA 애틀랜타 새생명 교회와 조지아 협의회 연합 김도준 전도사 목사 안수식 거행 이재위 2020.04.27 16890
32 GA 애틀랜타 새생명 교회 김도준 전도사 목사 안수식 광고 이재위 2020.04.19 18435
31 GA 조지아 협의회 "Gospel-19 기도회" 이재위 2020.04.17 14674
30 GA 조지아 협의회 주관 새생명교회 김도준 전도사 목사시취를 은혜가운데 마쳤습니다. 이재위 2020.04.17 16033
29 GA 조지아협의회 3월 행사 안내입니다. 이재위 2020.03.01 15006
28 GA 조지아 협의회 선교사 파송예배 및 선교 세미나 이재위 2020.02.25 15711
27 GA 조지아 협의회 은퇴/원로 목사(사모) 감사의 날 이재위 2020.02.12 15483
26 GA 조지아 협의회 2월 정연경목사, 정은희 사모 선교사 파송예배 및 선교 특강 안내입니다. 이재위 2020.02.11 16512
25 GA 2020 조지아주 남침례회 한인교회 협의회 사업총회 이재위 2020.01.14 16326
24 GA 2019년 조지아 협의회 정기총회 소식 알려 드립니다. 이재위 2019.11.14 15737
23 GA 2019년 조지아 협의회 사모수양회 이재위 2019.05.16 17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