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1년 3월 14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제 2과
신자들은 무엇을 축하해야 하나?
학습구절: 누가복음 15장 20 -32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축하해야 한다.
주요교리: 전도와 선교
사람이 성령님에 의해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태어난
것을 의미한다 [행 10 : 42-43].
암송구절: 누가복음 15장 17절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When he came to his senses, he said.
‘How many of my father’s servants have food to spare,
and here I am starving to death.’”
시작하는 글:
“다시 만나는 일”은 특별하다.
우리는 군인들이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다시 만나는 장면을 뉴스를 통해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만일 멀리 떨어져 있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자녀들이 있다면, 부모들은 자녀들보다 더 휴일이나 봄
방학 혹은 여름 방학을 기다릴지 모른다.
가족이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그렇지만, 만일 헤어진 일이 잘못을 행한 것이나 신뢰가 깨어진 결과로 비롯되었다면, 어떻겠는가?
그러면, 다시 만나는 일은 다른 종류의 강도(强度)와 감정(感情)을 띄게 된다.
2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그의 자녀로 영접하여 들이실 때 우리가 함께 기뻐하며 축하해야 할
것을 예시(例示)하기 위하여 한 비유를 들어 집을 나갔던 아들이 다시 돌아와 가족과 다시 만나는
재결합에 대해 말씀하셨다.
당신은 다시 만남의 어떤 점들을 기뻐합니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 사이에 화해(和解)가 이루어질 때 왜 우리는 축하해야 합니까?
본문 배경설명
누가복음 13장 22절로부터 16장 31절까지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데 집중(集中)하셨지만, 가시는 길에 그는 시간을 내어 마을과
성읍에서 가르치며 병자들을 고치는 등 사역을 하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고 싶어하는지를 설명하셨는데, 문제는
천국에로의 그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다.
금주의 본문에서는 특별히 세 가지의 이야기가 그 같은 사실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첫째로, 주인이 문을 한번 닫은 후에 손님들이 늦게 도착한 비유의 이야기는 회개(悔改)의
절박성을 강조하고 있다 (눅 13: 24 -30; ).
주인은 그들에게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각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고 한다 (13: 27).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고 하신다 (13: 30).
둘째로, ‘큰 잔치’의 비유는 핑계나 변명으로 잔치초대를 거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14: 15 -24).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청하였으나 “다 일치하게 사양하[였다].”
한 사람은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함으로 올 수 없다고 하였다 (눅 14: 18).
또 한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으[므로] 시험하러” 가야 한다고 하였다 (눅 14: 19).
또 한 사람은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고 하였다 (눅 14: 20).
셋째로,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는 너무 늦어서 회개할 수 없는 위험성을 강조한다 (눅
16: 19 -31).
그래서 성경은 지금이 바로 “은혜 받을만한 때”이자 “구원의 날”이 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사 49:
8; 고후 6: 2).
각 비유에서, 응답하지 하지 않은 사람들은 왕국에서 제외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실수록 위험은 더욱 심해졌다.
바리새인들 중에는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고 경고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눅 13: 31).
동시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정죄하려고 계속해서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였다.
“한 바리새인 지도자”가 예수님을 한 연회에 초대하였다 (눅 14: 1 -6).
예수님은 그 곳에서 “수종병 든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에 병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고
물으셨다.
그들이 잠잠히 있자, 예수님은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주셨다.
예수님은 헤롯에게 위협(威脅)을 받거나 바리새인들에게 위축(蝟縮)이 되지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