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년 4월 29일 주일
제 9과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삶 (교사용)
학습구절:
고린도후서 1장 1 -14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자신들이 겪는 시련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알 때 힘과 위로를 얻는다.
주요교리: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그의 은혜의 목적에 따라 그가 지으신 우주와 모든 창조물과 인류 역사의 흐름을 다스리시며 관리하신다.
암송구절: 고린도후서 1장 4절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Who comforts us in all our troubles, so that we can comfort those in any trouble with the comfort we ourselves receive from God.
시작하는 글:
영어로 “comfort zone”이라는 용어가 있다.
그 말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한다면, “안락하고 안전한 지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흥미 있고 의미 있는 일이다. 먼저 그 용어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친숙하고 편안하게 느끼며,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태를 가리킬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안락하고 안전한 지대”를 구축하는 일에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런데, “comfort zone”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신의 ‘안락하고 안전한 지대’에서 벗어나, 위험들을 무릅쓰고, 전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보려는 도전을 받을 수 있다.
당신은 어떤 상황에 있으면 “안락하고 안전한 지대”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최근에 "안락하고 안전한 지대”에서 벗어나는 일들을 시도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안락하고 안전한 지대”에 머물러 있는 것과 벗어나는 것의 이점이나 장점들은 어떤 것들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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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선교사와 순회 교회 개척자가 되어 갖가지 역경과 위험을 무릅쓰며 “comfort zone”을 벗어난 삶을 살았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바울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그는 기꺼이 믿겨지지 않는 위험들을 감수하였다.
이 주의 학습구절들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그가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생각할 정도로 역경과 위험을 겪었던 것을 보게 된다 (고후 1: 8).
바울은, 그러나, 그 같은 시련 가운데서 위로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고린도후서를 자기가 받은 위로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자비의 아버지”와 “모든 위로의 하나님”으로 불렀다.
더 나아가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자기로부터 그들에게 그리고 그들로부터 자기에게 미친 것을 설명하였다.
신자들은 자신들이 겪는 시련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알 때 위로를 얻는다.
본문배경설명
고린도후서 1장 1절부터 2장 13절까지
우리는 지난 주까지 고린도전서 공부를 마치고 앞으로 다섯 주에 걸쳐 “고린도후서”를 공부하게 된다.
이 서신의 처음 몇 장은 바울과 고린도교회와의 관계 그리고 고린도전서를 써보낸 이후에 진행되고 있던 몇 가지 문제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시작하면서 자신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밝힌 것은 자신의 사도 직을 옹호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고후 1: 1).
이는 거짓 교사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바울의 권위에 도전하며 바울의 가르침에 의혹을 품게 하고 분쟁을 일으키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에베소에 있었을 때에, 고린도교회가 심각한 문제에 빠져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은 그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들이 편지로 질문한 몇 가지 교리적인 문제들에 대해 대답하기 위하여 써 보낸 편지가 고린도전서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5장 9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라고 밝힌 것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전서 이전에도 편지를 써 보내었는데, 보전되어 있지 않고 있다.
고린도전서로 남아있는 편지를 써 보낸 후에도,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하던 사역을 중단하고 고린도 교회를 급히 서둘러 방문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였다.
바울은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라는 말로 그 방문을 평가하였다 (고후 2: 1).
근심과 걱정하는 마음으로 찾아갔던 방문은 의도했던 대로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도리어 어떤 성도는 바울에게 직접 도전하고 나설 정도로 관계가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
에베소로 돌아온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 보내는 신랄한 내용의 또 다른 편지를 썼다.
바울은 그 편지를,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쓴 편지로 묘사하였다 (2: 4).
그것은 또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성도를 교회가 징계할 것을 권하는 내용의 편지였다 (2: 6).
바울은 디도의 편에 그 편지를 고린도 교회로 보냈다.
디도가 편지를 전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바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마음의 걱정과 근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디도를 기다리면서 아가야 지역과 더 가까운 마게도냐 지역으로 갔다 (행 20: 1).
바울이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고 술회한 것을 보면, 당시의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고후 7: 5).
그런데, 디도가 마침내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던 것이다 (고후 7: 6 -13).
고린도 교회가 죄를 회개하고 바울에 대해 가지고 있던 그릇된 태도를 고쳤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바울은 또한 그 일로 인해 자기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걱정하고 근심한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표현하였다.
그 같은 기쁜 소식을 듣고 기쁨과 감사에 가득 차서 써 보낸 편지가 고린도후서이다.
학습구절 연구:
하나님의 위로를 받다 (고린도후서 ( 1장 3 -7절)
1: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1: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1: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
1: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느니라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1: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한 줄을 앎이라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일을 하는 것으로 인해 고난을 받을 때에 자비와 위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는 또한 고린도의 신자들도 그 같은 일을 행하는 것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도 하나님께서 위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1장 3-4절 - “찬송하리로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자신이 ‘찬송한다’라는 뜻과 다른 사람들에게 ‘찬송하자’고 요청하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찬양 인도자가 예배자들에게 함께 여호와를 찬양하자고 촉구하는 구약의 시편들을 연상케 하는 구성형태가 되고 있다 (시 66: 20, 68: 35).
사도 바울도 그처럼 고린도의 신자들에게 자기와 함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찬송하자고 하였던 것이다.
원문에서는 바울이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도 불렀는데, 그 호칭은 그 찬송이 기독교 특유의 것이 되게 하며 약속된 메시야이신 그의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게 만드는 것이 되고 있다.
일세기 당시의 유대 예배자들은 하나님을 종종 “자비의 아버지”로 불렀다.
그 말은 언약의 백성들을 대하실 때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켰다 (출 34: 6).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의 구세주로 보내주셨을 때 그의 자비와 은혜를 나타내 주셨다.
죄인들인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자비를 받거나 얻을 자격이 없다.
우리는 은혜로 하나님의 자비를 얻는다 (딛 3: 5 -7).
바울은 하나님이 자비의 아버지가 되실 뿐 아니라,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하였다.
그 고백은 하나님께서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신다)”고한 바울의 주장의 기초가 되고 있다.
바울은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으며, 그때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다.
그 같은 경우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믿는 자들을 위로해 주시는가?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통해 믿는 자들을 격려해 주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도와 주셨는지에 대한 많은 예들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성령님을 통해 신자들을 도와주시며 강하게 해 주신다.
성령님은 신자들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며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그들을 위해 간구해 주신다 (롬 8: 26).
“위로”라는 용어는 성령님에 대한 예수님의 묘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