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소식

마게도냐 환상을 따라서 (4)

Billy park 0 15,816 2016.01.06 10:45

 

물질적으로는 큰 손해를 본 것 같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기쁨과 보람이, 모든 것을 버리고 선교지로 떠나 함께 공동생활하게 된 그들 모두에게 상급으로 주어졌다. 아침저녁으로 갖는 기도회와 나눔 그리고 낮의 노동 등 R. A. 토레이 신부님의 강원도 산골짜기의 예수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하여간 헌신자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소위 ‘comfort zone’인 미국과 한국의 여느 교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참교회의 모습, 또는 유무상통했던 초대교회를 조금이라도 구현해 볼 수 있는 축복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때 그들의 인생 가운데 한번 정신을 크게 차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 “내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은 받았지만, 터가 되시는 그리스도 위에 나는 무슨 재료로 지금 내 인생을 짓고 있는가? 사도 바울이 비유한 바, , , 보석, 나무, , 지푸라기, 이 여섯 중 무엇으로? 주께서 불로 공력을 시험하시는 날, 상은커녕 결국 다 타버릴 재료들로....?”(고전 3:10-15)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자신을 살펴보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결단의 표로 영육간에 이 정도면 됐지하는 위험한 현실안주(complacency)의 덫을 애써 거부하고 땅끝으로 간 자들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주님 안에서의 같은 목적을 갖고 모인 그들에게 공동생활은, 물론 자아들이 계속 충돌하고 깨지는 훈련은 서로 계속 감당해야 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후방에 있는 교회들과는 달리,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이토록 전 편에도 쓴 선교를 가게 된 동기와 과정을 더 자세히 반복하듯 쓰는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 선교사들이 가서, 통상의 정의에 따른 선교에 따르면 별로 한 게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질문은 원론적으로, 과연 선교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성공한 선교인가?”하는 것이다. 선교학자로부터 실제 선교현장에서 뛰는 선교사에게 이르기 까지 선교에 대한 정의와 방법은 대동소이할 수도 있고 또 세부사항에 들어가서는 아주 또는 조금씩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교가 다른 문화권으로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영혼들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 외에, 이에 비해 같은 문화권 안에서의 복음 전파인 전도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단순 정의에 의거해 본다면, 우리 교회의 동티모르 선교는 한 마디로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 선교의 열매를 몇 명이나 구원받았는가로 따진다면, 그저 3년을 최선을 다하고자 했지만 한 명의 결신자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로, 밤이 맟도록 애썼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예수님께 고백한 베드로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체험했다고나 할까. 아니면 200년 전, 버마에서 억울하게 옥에 갇히는 등, 온갖 고초 끝에 6년이 지나도 한 사람도 구원으로 못 건진, 미 대륙에서 파송된 최초의 선교사 부부 Adoniram and Ann Judson의 심정을 감히 좀 경험했다고나 할까. 좌우간 동티모르는 소위 쉬운선교지가 아니었다. 선교지는 둘째 치고, 미국이고 한국이고 간에 어딘들 쉽게 복음을 받아들이겠는가만 서도 동티모르는 정말 쉬운 곳이 아니었다. 우리 교회 선교사들에게 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 온 선교사건 교단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힘든 곳이었다.

 

어쨌든 그렇지만, 주께서 가라신 게 분명하기 때문에 선교사역을 착륙시켰는데, 거기서 제일 먼저 만난 선교사들 중 한 분이 아주 쇼킹한 말씀을 아주 진지하게 우리에게 하는 것이었다. “귀 교회에서 오신 이 많은 선교사님들을 만나 모든 분들의 배경을 듣고 보니, 이 나라에 잘못 오셨습니다. 나도 그동안 선교사로 중동과 인도 등 여러 나라에서 선교를 해왔고, 이 나라가 여섯 번째 나라인데, 세상에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이제까지 이런 나라를 첨 봤습니다.” ! 이런 인사가 어찜인고?!? 잘못 오다니, 이렇게 어린자식들까지 끌고 남부여대(?)하여 여기까지 왔는데 선배 선교사의 환영사 비슷한 말이 잘못 왔다니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우리는 묵묵히 서로 얼굴로 사인을 주고받으며 계속 충고를 듣고 있었다.

 

이런 나라를 첨 보셨다니요? 그리고 저희 보고 잘못 왔다니요? 우린 분명히 주님의 뜻이라 믿고 이 대식구가 헌신해서 왔는데요.” “앞으로 겪어보시면 알겠지만, 한 마디로 이 나라 사람들은 혼이 없습니다, 혼이. 다시 말해 복음을 전해도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물질적인 도움을 주기 전에는. 물론 예수님도 둘 다를 다 하셨지만, 복음을 듣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야하는가의 문제인데, 예를 들어, 제가 여기 온지 6년이 됐습니다. 정말 제 아내와 제가 영육 간에 무엇보다 주님의 복음의 혁신을 여과 없이 전하고자 하느라고 했습니다. 고아들과 가난한 집 아이들을 데려다가 우리 집에서 같이 살면서요. 지금도 상당수를 소위 우범지대에서 데리고 삽니다.”

 

상당히 존경스런 분이었다. 본래 믿는 부인을 심히 핍박하다가 주님의 크신 은혜로 고꾸라져서 회개하고 선교사로 일찍이 나선 분으로 그때 그 목사님의 사모님은 말라리아 등 병이 나서 쇠약해진 관계로 잠시 한국에 치료를 받고 쉬러 간 상태였다. 연배는 나보다 조금 위인 이 분은 참으로 소위 예수 제대로 만나 깨져 오직 주님의 복음 전함에만 팔린 전도자요, 선교사였다. 오래전 영국에서 시작된 형제 교단의 한국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누구에게나 분명한 복음을 전하고 또한 그 구원의 확증을 위해 다지고 또 다지는 확실한 복음 증거자였다. 땅끝에서 이런 귀한 복음의 동역자를 만나다니 실로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계속>

 

출처 : 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19호(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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