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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문젠는 네오 막스즘 사상 때문

Billy park 0 7,854 2015.06.06 08:11

2015/06/01 ()

소 목사는 지난달 31일 새에덴교회 주일예배에서동성애, 당신도 동의하십니까?’(1:24-27)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오는 69일 서울시청앞광장에서 열리는 동성애자들의 행사인 16회 퀴어문화축제를 한국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소 목사는 특히 동성애 문제는 네오 막시즘 사상 때문이라며 네오 막시즘은 성정치 이론을 통해서 가정의 고정관념부터 깨는 운동을 한다.”한 남자는 한 여자에게 구속될 필요도 없고 한 여자도 한 남자에게 제한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성은 얼마든지 자유로운 것이니 즐기라는 것이라며 네오막시즘을 주장을 소개했다.

 

네오막시즘의 안목으로 볼 때 그들의 가장 큰 원수가 교회라는 사실도 밝혔다. 소 목사는 불교도 동성애를 지지하고 가톨릭도 동성애를 지지하는데 교회만 반대한다.”그래서 어떻게든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이다. 건수만 있으면 교회를 공격하고 대형교회 목회자들을 흔들어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 목사는 이러한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흐름이 전세계적으로 불어오고 있다. 특별히 한국엔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그래서 한국교회를 향한 비난과 공격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교회가 잘못해서 그런 공격을 당하는 면도 있지만, 이런 흐름 때문에 더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며 거듭 한국 교회가 깨어 동성애문제를 대처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다음은 설교 전문.

 

얼마 전 프랑스의 언론인인 에릭 제무르라는 분이 프랑스의 자살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지금 프랑스는 이슬람이나 동성애 등의 문제로 자살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시작이 68혁명이었다는 것입니다.

 

68혁명은 1968322일 낭테르대학에서 시작된 학생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결국 노동자들까지 가세하여 전국을 마비시킨 대규모 운동이었어요. 그들은 금지하는 모든 것을 금지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정치적, 사회적, 성적(性的) 금기 등 인간의 삶을 구속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깨뜨리고자 하는 도전과 저항운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68혁명의 세대들은 아버지 세대의 지도적 권위를 부정하고, 기성세대의 전통적인 질서와 가치관을 거부하면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탈규범적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나갔어요. , 이슬람 등 이민자와 다른 종교를 포용하고, 자유, 환경, 페미니즘 등 비물질적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 풍토를 만들어간 거예요.

 

그런데 제무르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68혁명의 정신 기조가 바로 프랑스 몰락의 원인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거예요. 그는 한 이탈리아 신문 인터뷰에서 "프랑스가 500만 명이 넘는 이슬람 신자를 추방하지 않으면 내전에 빠질 것"이라고 충격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회학자 쥘리 파지라는 사람도 68혁명을 주도했던 자들의 삶을 추적 조사해 보니까 대부분 자살·약물중독 등에 빠지는 경우가 많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68혁명으로 인한 또 하나의 중요한 병폐 현상이 바로 동성애 문제였습니다. 동성 결혼 반대 단체인 '모두를 위한 시위(LMPT)'68혁명의 이데올로기가 현재 동성애의 뿌리라고 주장했어요. 이처럼 68혁명 때문에 프랑스가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거예요.

 

이것은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 68혁명 이데올로기가 영국에도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윌리엄스 변호사라는 분이 한국을 방문하여 이런 이야기를 하였어요. (영상) 영국에서 처음에는 낙태문제가 발생하였는데, 영국 교회는 낙태에 대해서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 다음은 동성애문제였어요. 하지만 동성애에 대해서도 교회는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이슬람의 도전을 받았어요. 그 때도 영국교회는 전혀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내 샤리아법이 통과되었고 이슬람에 문을 열어주고 말았어요. 원래 영국은 위대한 기독교 국가였어요. 아니, 해가 지지 않는 선교대국이었어요. 그러나 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반기독교적 사상과 공격에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개교회주의에 빠진 거예요. 그저 자기 교회, 자기 교단만 잘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남의 교회가 카페로 팔리고 이슬람 사원으로 넘어가도 내 교회만 문제없으면 괜찮다는 안일주의와 무관심에 빠져 버렸어요. 이러기를 20, 30년 하다가 영국교회는 완전히 좌초 위기를 맞고 있어요. 그래서 윌리엄스 변호사는 여기 저기 순회강연을 다니면서 젖은 눈동자와 목이 메는 목소리로 외쳤어요.

 

한국교회도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연합하지 않으면 수십 년 안에 몰락하고 말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절대로 영국교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됩니다. 무조건 연합해서 한목소리를 내며 사회의 잘못된 흐름을 막아야 합니다. 아무리 개교회가 부흥하고 큰 교단을 이루어도 서로 다른 소리를 내고 연합기관 간에 마찰이 발생하면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정말 윌스엄스 주장이 맞습니다. 저는 동성애 퀴어축제라는 것이 샌프란시스코나 시드니 같은데서만 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바람이 불어왔어요. 이번 69일날 서울시청 앞에서도 개막식을 하고 628일에는 퍼레이드를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이게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나라 현실이 되어 버렸어요. 세상에 다른 곳도 아니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동성애 축제를 열도록 서울시가 허가를 해 주었다는 거예요. 또 그런 것이 세계적인 추세요, 흐름이라며 동의하고 지지해주고, 박수쳐주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박수치며 동의하는 그런 분들에게 묻고 싶어요. 만약에 내 자녀가 온 몸을 발가벗고 그 축제에 참가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느냐구요. 만약에 내 자녀가 서울시청 앞에서 홀라당 벗고 여자끼리 키스하고 남자끼리 애정행각을 벌인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말입니다.

 

또 어느 날 아들이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서 신부감을 데려왔는데 남자애를 데려왔다고 합시다. 또 하나 밖에 없는 딸아이가 신랑감을 데려왔는데 치마를 입은 계집애를 데려왔다고 합시다. 그 사람의 마음이 정말 기분이 좋을까요? “, 신랑감, 신붓감 잘 데려왔다고 내 자식도 환영해 주며 박수를 쳐 주겠습니까?”

 

아마, 남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들도 막상 자녀가 그렇게 된다면 가슴이 미어지고 아프리라고 봅니다. 여러분, 말로만 듣던 동성애 축제 모습을 잠깐만 보세요. <영상> 여자건, 남자건 모두 홀라당 벗고 동성끼리 저렇게 좋아서 히히 낙락 거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특별한 것은 한 남자가 항문으로 물똥을 주루룩 싸고 다니는 모습을 보십시오.<영상> 얼마나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합니까?

 

원래 항문은 하나님께서 변을 보라고 만들어 주신 거예요. 그런데 변을 보는 구멍에다가 끊임없이 성행위를 해대니 괄약근이 고장 나 버린 거예요. 그래서 변을 참지 못하고 항문으로 줄줄 싸고 다니는 거예요. 본인은 좋다고 하지만 저런 행위가 과연 인간의 행복일까요? 아무리 소수 인권이 존중되고 개인의 자유와 가치를 존중하는 시대라 하더라도 저런 모습이 자기가 추구해야 할 가치요 행복의 기준이라고 여기십니까?

 

그런데도 저 사람들은 그것이 행복의 기준이요, 삶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바람이 세계적으로 불어 닥치고 있어요. 그래서 좀 진보적인 사람들은 이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그냥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나 서울 시장같은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동성애 바람이 거대한 폭풍처럼 불어오고 쓰나미처럼 들이닥쳐 올까요? 우리는 그 사조와 추세의 기원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학문은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출발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철학이 그렇습니다. 탈레스에서부터 플라톤에 이르기까지 철학은 우주의 기원과 만물의 시작을 탐구하는 거예요. 특별히 플라톤 때 와서는 현상계와 이데아의 세계를 탐구하고 연구했어요.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의 세계는 완전하고 이상적인 세계인데, 그는 이 이데아를 통해 신적인 존재나 세계를 설명하려고 노력했어요.

 

인간 이성을 강조한 칸트까지도 플라톤의 철학을 어느 정도 계승하고 인정했어요. 그러다가 사조의 흐름은 구조주의로 변합니다. 구조주의란 구조가 인간의 이성을 컨트롤하거나 지배한다는 사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문화라는 구조, 언어라는 구조, 전통이라는 구조가 인간의 이성을 컨트롤한다는 거예요.

 

인간이 순수이성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고 규정하면 미국사람이나 아프리카사람이나 한국사람이나 다 똑같이 판단하고 의사를 결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미국 문화가 다르고 아프리카 문화가 다르고 또 한국의 문화가 달라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속한 문화나 언어나 사회 구조가 이성을 컨트롤하고, 그 구조 속에서 판단하고 결정하게 한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구조주의 시대까지만 해도 시대와 사회는 항상 어떤 보편적 규범이 있고 가치가 있고 통념이 있었어요. 그러기 때문에 그 시대와 사회는 보편성의 원리와 동일성이 지배를 했어요. 그러니까 그 때는 어떤 색다른 주장이나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들이 인정을 받지 못했어요. 그것들이 보편성이나 동일성을 따라와야 했고 그 안에 흡수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구조주의 다음으로 후기구조주의가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후기구조주의는 한 마디로 말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구조를 다 무너뜨려버리자는 것입니다. 동일성이나 보편성, 일반성을 다 해체시켜 버리는 거예요. 왜냐면 후기구조주의에서는 차이를 강조했거든요. 모든 인간과 만물의 존재는 다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사실 옛날에도 동성애 문제는 있었습니다. 역사에 보면 네로를 비롯하여 로마황제들 가운데도 동성애자가 많았고 삼국유사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신라시대 때부터 동성애자가 있었어요. 고려 시대에 공민왕도 동성애자였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구약에서도 소돔과 고모라나 모세 시대 때도 동성애를 거론하고 신약에서도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 때는 보편성이나 동일성의 구조에 그것들이 다 흡수가 되어 버린 거예요. 그런데 후기구조주의에 와서는 개인의 차이를 강조하다 보니까 보편성이나 동일성을 다 무너뜨려 버려요. 전통적인 가치나 구조, 통념... 이런 것들을 다 해체시켜 버려요. 개개인마다 다 차이가 있으니까 욕구의 차이도 있다는 거예요. 따라서 그 욕구를 따라 사는 권리가 있고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바로 이런 것을 사회적 통념이나 규범같은 것으로 제어하고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후기구조주의를 포스트모던이라고도 해요. 이러한 사조에 프로이드의 심리학을 연결했어요. 프로이드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개인의 잠재된 깊은 욕구가 있어요. 그 욕구를 발산시키고 충족시키며 살게 되면 누구나 개인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바로 이것이 네오 막시즘(Neo Marxism)이라는 이론으로 포장되어 젊은이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사실 막시즘이 한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왔습니까? 구조주의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역사의 발전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미래에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막시즘은 역사발전을 주장합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하여 부르조아를 무너뜨리고 지배계급도 없고 피지배계급도 없는 모든 사람이 균등하고 평등하게 사는 이상적인 시대가 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막시즘은 한동안 전 세계의 절반 가까이 지배한 적이 있어요. 이 이야기를 노동자들이 들었을 때 얼마나 매혹적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지구상에 그런 나라가 한 군데라도 있습니까? 레닌도 실패했고 스탈린도 실패했어요. 모택동도 실패했습니다. 공산국가일수록 얼마나 권력의 암투가 심하고 지배계급 간에 피의 보복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래서 동구권의 공산국가들이 다 망했버렸어요. 중국은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시장 경제를 추구하게 되었지 않습니까?

 

그러자 구라파 젊은이들에게 막시즘은 더 이상 매력이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후기구조주의가 등장하면서 네오 막시즘이 출현하게 된 거에요. 네오 막시즘을 주장한 사람이 빌헬름 라이히라는 사람인데요, 이 사람은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드 심리학을 아주 교묘하게 접목을 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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