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자료

김성로 목사를 음해한 정이철의 글에 대한 4번째 반박문 (이재위 목사)

이재위 목사

 (이재위 목사, 뉴에덴침례교회) 

 

부활의 중요성을 왜곡하는 사람들에게 4


원글: http://ikccah.org/index.php?mid=board_pjuB87&document_srl=5792

 

 

바른믿음  정이철목사는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목사가 신부활교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부활교의 가장 큰 특징을 ‘살아계신 부활님’이 차지해 부활교 속에서 성령이 역할이 사라지고 ‘살아계신 부활님’이 차지했다.라고 주장한다. 

또 “성도의 믿음은 아무 증거를 보지 못하여도 믿어지는 것이 믿음이며 그 믿음의 내용에 기꺼이 순종하게 된다. 이것이 믿음을 주는 것이 성령사역이다.”라고 주장한다. 

 

정이철목사가 이런 주장을 할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필자의 개인적 견해는 기독교 변증학의 무지로 인한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을 구분하지 못한 성령론과 구원론의 신학적 부재로 나타난 결과임을 보게 된다. 또 자의적이며 자기도취적인 성서해석은 결국 그의 성경해석의 왜곡과 무지들을 볼 수 있다. 

 

정이철목사가 오해하는 기독교의 증거의 개념과 부활의 기능에 대해 기독교 변증학적인 입장과, 개혁주의 성서해석을 바탕으로 논박 하려고 한다.

 

1. 성도의 믿음은 아무 증거를 보지 못하여도 믿어지는 것이 믿음?


정이철목사의 심각한 오류가 “믿음을 아무 증거를 보지 못하여도 믿어지는 것이 믿음”이라고 정의 한다.  전제적 믿음에 근거한 기독교에서 추구하는 믿음에 대한 성경적 개념 부재이며 성경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는 말씀의 원 의미를 주관적으로 해석한 결과이다.

부활(죽으심과 살아나심)이 주는 참 의미를 알지 못하면 아무리 신학을 공부하고 연구해도 알 수 가 없다. 성경의 삼분의 일을 기록한 사도바울은 탁월한 신학자이고, 탁월한 기독교 변증가이기 전에  생명걸고 복음 전한 부활의 증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온전히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정이철목사와 커뮤니케이션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변증학의 개념을 잠깐 설명하려고 한다. 기독교 변증학을 아폴로기아(Apologia)로 변호, 즉 법정에서 피고의 무죄를 증명하는 논리 정연한 주장 또는 논증이나 신념의 정확성를 입증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믿음의 시작은 “개인의 감정과 주관적인 느낌이 아닌 역사를 기반한 사실을 바탕으로 사실을 사실대로 믿는 것이 기독교가 추구하는 본질적 믿음이다.” 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눅 1:1)


알리스터 맥그리스는 변증학이란 기독교 학문의 한 분야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변호하고 그것을 비기독교 세계에 효과적으로 전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즉 변증은 소통이며 믿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믿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목적이 변증학이라고 정의한다.

 

기독교의 변증학에서 첫번째 명제는 “예수는 완전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명제는 반드시 참 명제인지 거짓 명제인지 반드시 증명이 있어야 하며 증명되지 않은 명제는 진리일 수 없다.
증명은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이해되게 증명하는 것을 말한다. 무조건 믿는 것이 결코 바른 믿음이 아니며 본질적으로 기독교가 추구하는 믿음은 확실한 근거를 통해서 믿는다.

 

기독교의 가장 위대하고 본질적인 질문은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 만약 이 질문의 분명한 답을 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복된 사람이며 가야할 길은 분명해 지는 것이다. 베드로는 당당히 예수님의 질문에 답할 수 있었지만 죽음에 위기 앞에서 무너졌다. 베드로는 진실로 예수님을 사랑했고 죽음을 불사하고 따르기로 약속했지만 실제 죽음의 위기 앞에서 그의 신앙은 무너진 것이다. 왜냐하면 확실한 부활의 증거위에 믿음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신론자 조지 H 스미스(George H. Smith)은 “믿음이란 이성 없는 신념이요 이성을 거역하는 신념이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그리스도인 교육가 W. 빙햄 헌터(Bingham Hunter)의 생각은 정반대의 견해를 제시한다. “믿음이란 자연, 인류역사, 성경, 부활하신 아들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합리적 반응이다.” 합리적 반응이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 즉 증거를 가지고  믿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예일대 법학부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미주리 대학교에서 저널리즘 학위를 받았으며 시카고 트리뷴지 법률 편집자로 일한 바 있는 리 스트로벨은  목격자의 증언, 증언재조사, 기록상의 증거, 과학적 증거, 심리학적 증거, 구약 성경의 증거, 기타 역사적 증거 예수는 단지 인간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 하며 예수의 탁월한 도적적 삶과 ‘부활’을 통해 예수가 독생자의 아들임을 증거한다.

인간이 판단력과 분별력을 가지고도 기적(부활)을 믿을 수 있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증명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영국 버밍엄 대학교 철학 박사, 독일 뮌헨 대학교 신학박사 학위, 현재 탈봇 신학대학원 철학 연구 교수로 재직 중인 윌리엄 레인 크레그(William Lane Craig)박사는 예수의 기적적 부활 같은 사건을 믿는 것도 합리적인 일이 된다. 왜냐 하면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는데 그분이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확률적으로 낮냐는 것이다. “부활의 증거의 양과 질을 따져보고 기독교를 믿게 된 사람들이 있는가? 물론이다. 라고 주장한다.

윌리엄 크레이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는 확신을 위해 박사님은 무엇을 찾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예수는 인간의 역사 속에 간섭해 들어온 하나님 나라의 표징으로 기적과 축사를 행했으며  예수의 독특한 삶과 사역 들을 통해 예수가 전한 메시지의 진실성을 입증했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신적 권위 배후에 ‘부활’이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믿음의 정의를 “믿음이란 자신이 사실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신뢰하고 헌신하는 것을 말한다.” 크레이그는 자신의 각막이식 수술의 예를 통해 누군가 안심하고 눈 수술을 맡기기 위해 전문의를 수소문하기 위해 조사, 증거를 살핀 뒤 연락을 취해 대화를 했다. 그리고 최고라는 증거를 바탕으로 확신을 얻은 뒤에 믿고 수술을 맡겼다.  내가 그를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자격과 신빙성에 관한 확보한 증거들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기적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 기독교가 사실이라는 증거를 바탕으로 확신을 얻은 후에야 신뢰하고 헌신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활용하는 것이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이다. 

 

정이철목사의 주장처럼 증거가 없어도 성령을 통해서 믿는다면 관념과 신념으로 근거한 전제적 믿음에 불과하며 성령의 사역과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증거를 부인하는 주장이다.

 

 

      2. 왜 기독교의 순교가 독특한가?


인간은 자신의 신념과 사상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초대 기독교 순교자들이 독특한 이유는 자신들이 목격한 사건을 증거하다 생명을 바쳤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이며 대표적 성경 인물로 사도바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행 23:6)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 뿐이라” (행25:19)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행 26”22-23)


정이철목사에게 질문한다. 역사적 부활이 신앙인가? 사건인가? 변증학적인 관점에서 역사적 부활을 믿을만한 증거로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만약 역사적 부활을 사건의 관점으로 먼저 보지 못하면 당연히 부활을 증거의 관점으로 보지 못한다. 역사적 부활을 일차적으로는 사건임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정이철목사는 역사적 부활을 사건의 관점이 아닌 십자가로 당연히 따라오는 종말론적 부활의 신앙의 관점으로 먼저 보다 보니 역사적 부활을 믿을 수 있는 증거의 관점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큰 오류이며 김성로목사가 왜 부활을 강조하는지 이해조차 하기 힘들며 오히려 반감만 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정이철목사는 부활을 증거하는 춘천한마음교회와 김성로목사에게 “초대교회의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을 보고서 믿음을 가졌다고 강조하는데, 그러면 김성로 목사의 부활교 신자들은 대체 무슨 방법으로 믿음을 가졌습니까? 타임머신을 타고 예수의 부활이 일어난 2,000년 전으로 돌아가서 빈 무덤과 다시 사신 예수의 몸의 못 자국을 확인하고, 다시 2,000년 후로 돌아와서 예수를 믿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입니까?” 라고 주장한다.

 

자칭 이단 연구를 한다는 단체의 대표가 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판사가 재판을 할때 사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증거와 증인, 여러가지 정황을 보고 판결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의 증거를 믿을 수 있는 방법은 성경을 통한 사건의 여러가지 정황들, 사도들의 증거, 일반 역사책의 증거와 여러가지 정황등을 통해서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역사속에 가장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윌리엄 크레이그의 주장처럼 “미사일을 발사하려면 반드시 발사대가 있어야 한다.

 

정이철목사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직접 타임머신 타고 가서 직접 보고 믿었습니까?

기독교 변증학의 개념을 상실한 발언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목회자이며 자칭 이단연구를 한다는 분이 너무 질문이 유치하지 않은가?

 

왜 부활사건이 중요한가? 믿음의 마침표를 찍어 주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수많은 기적과 체험이 경험했지만 결국  부활사건을 통해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었다고 성경은 증거한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요 2:22)


이 말씀의 원 의미는 시편 16:10편의 구약에 있는 부활 예언을 가리키며 예수가 성전된 자기 육체를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다는 예언을 부활사건 후에 제자들이 바르게 인식하여 믿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즉 역사적 부활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오신 그리스도, 하나님이심을 제자들이 확실히 믿게 되었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즉 부활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 사역에서 하신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는 최종적 권위로 작용한다.

 

기독교의 본질적인  신앙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하나님(그리스도)으로 믿고 십자가를 통한 속죄의 은혜로 종말론적 부활을 소망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 신앙의 배경에는 역사적 사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세워지는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이 주는 참 의미를 알때 그리스도인이 가야할 길이 분명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시작과 믿음의 촛점이 중요하다. 기독교의 믿음의 시작과 촛점에 대해 고린도전서 15장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내 말을 내가 전한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1-4)


고린도전서 15장 신조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으며 심지어 바울은 1세기 회의론자들에게 그들을 만나 보고 사건의 진실성 여부를 직접 판정하라고 했다. 사도행전에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초창기 확증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고, 복음서에도 부활 후 여러 차례의 목격담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영국의 신학자 마이클 그린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예수가 부활 후 나타난 것은 고대의 어떤 사건 못지 않게 잘 확증되어 있다. … 그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났는지에 대한 의심은 있을 수 없다.  J.P. 모어랜드(Moreland) 박사는 예수의 부활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상황적 증거를 제시한다. 부활 사건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으로 확증케 하는 지상 최고의 역사적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뒷바침하는 정황들이다.

 

첫째, 제자들의 부활의 발생 여부를 알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었는데 바로 그 제자들이 목숨까지 버려가며 부활의 사실을 전파했다.거짓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위해 기꺼이 죽는 사람은 없다.

 

둘째, 부활이 아니라면 바울과 야고보 같은 회의론자들이 회심하여 신앙을 위해 죽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전혀 없다.

 

셋째,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지 몇 주 내에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신하고, 수세기 동안 사회적 종교적으로 절대시했던 사회관습마저 버린 채 그분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회에서 종교적으로 절대시했던 사회 관습마저 버린 채 그분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회에서 매장당할 위험까지 감수하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넷째, 성만찬과 침례는 예수의 부활과 신성을 확증해 준다.

 

다섯째, 로마의 무지막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교회가 출현한 사실은 모울(Moule)의 말대로 “역사에 위대한 구멍, 즉 부활 만한 크기와 모양의 구멍을 뚫어 놓았다.

 

동사무소에서 자신의 대한 증명서를 뗄때 반드시 나라고 하는 객관적인 증거를 주민등록증을 통해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자신이 부활한 예수인지를 객관적인 증거 구약 성경을 통해서 증명했다는 것을 기억 해야 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핵심은 제자들에게 생명걸고 복음을 전할 확실한 믿음과 모든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변증의 증거를 주기 위해서이며 또 하나님은 자신이 한 약속과 성취를 통해 신실하신 하나님의 속성과 섬세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구원의 참된 증거인 것이다.

 

“또 이르시되 내가(예수)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4-48)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주장대로 하나님의 독생자였다는 사실에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함으로 무신론자였던 리 스트로밸은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주장했던 무신론은 역사적 진실의 무게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라고 고백한다.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목사는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중에 가장 큰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는가? 질문에 대해 김성로목사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모든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증거를 통해서 믿는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왜 기독교에 부활이 중요한가? 만약 기독교의 믿음이 하나님이 주신 증거로 믿는 믿음을 세우지 않으면 주관적이며 다양한 믿음의 형태들로 형성될 것이다. 우리 개혁주의신학은 하나님의 기적과 신비를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음 보다 앞선 신비주의는 배격한다.신비주의는 본질보다 현상에 촛점을 마추게 하기 때문에 결국 비본질이 본질로 설 수 있는 교묘한 사단의 전략임을 고린도 교회를 통해서 볼 수 있다. 

현재 신사도운동과 신비주의 영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초월적 하나님을 자신의 감정과 주관적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려고 하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이다. 복음의 가치를 알면 절대 복음보다 앞설 수 없다. 오직 복음만을 영화롭게 한다.

 

필자가 바라본 김성로목사의 목회의 최고 강점은 교회안에 복음보다 앞서는 어떠한 것도, 교회를 성장 시키는 수단이라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의 본질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한국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포듀대 석사, 아이오주 주립대학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한 형제가 있었다. 이 형제는 수학자이기에 자신은 증명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고 한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믿는가? 필자가 형제에게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만 증명 되면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질문을 제기했다.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예수님이 부활(죽으시고 살아나심과 승천)이 증명된다면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라고 질문했다. 그 형제의 답이 하나님이죠? 그렇다면 제가 부활사건이 실제 있었다는 것만 증명하면 믿을 수 있겠네요? 그 형제는 믿을 수 있다고 말했고 역사적 부활사건의 정황과 성경적 증거 즉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2개월을 만나서 전했다. 

 

이 형제는 부활의 증거 앞에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자신의 주인으로 믿게 되었다. 이 형제의 부모님이 필자에게 찾아와 어떻게 가르쳤길래 자신의 아들이 변했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부활’(죽으시고 살아나심) 입니다. 기독교의 독보적인 증거 ‘부활을 통해서 믿음이 시작되고 성령께서 이 믿음을 인치시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관한 말씀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하지만 성령의 역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관한 증거를  통해서 역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대 기독교 변증학자 윌리엄크레이그는 “하나님의 존재의 증거 중에 가장 핵심적인 증거는 예수의 부활임을 주장한다. 하나님을 믿을 만한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면 기적도 믿을 수 있다. 나사렛 예수가 정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면 우리는 우리 손에 하나님의 기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 증거를 확보하는 셈이다.” 라고 주장한다.

 

김성로목사는 진정한 능력자는 병고치고 기적 행하는 자가 아니라 복음을 소유한 자라고 강조한다. 그 만큼 복음의 능력과 가치를 알고 있다는 증거이다. 모 언론사에서 유일하게 중독자를 치유하는 교회라고 칭찬하자 김성로목사는 유일하게도 빼고 중독자를 치유하는 교회도 빼고 자신은 오직 복음을 증거하는 부활의 증인이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그래서 김성로목사는 교회안에 들어온 무분별한 영성운동, 프로그램, 신비주의를 배격하며 오직 복음(십자가와 부활)만이 온전한 믿음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오직 복음하나로 교회를 세우는 것을 보게 된다. 이렇게 분명한 결단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복음만이 모든 문제의 답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는 “천지 창조 보다 더 큰 사건, 전능자가 표적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은 이 땅에 어떤 사건보다 비교할 수 없는 지상 최고의 사건임을 강조하며 이 믿음으로 성경의 모든 말씀들을 확증할 수 있고 삶의 어려운 문제 가운데 심지어 질병과 죽음의 문제가 오더라도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하는 자신의 사도행전 칼럼을 통해 김성로목사는 증거한다.

 

“나는 왜 사람이 변하지 않는가?"를 고민하면서 오직 한 길만을 달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초대교회를 세운 원형의 복음인 부활의 복음으로 사람이 변화되는 것과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가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됐다. 그 감격과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제 전진하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2009년, 나는 폐암을 진단받았다. 

 

대부분 충격과 염려로 환자들이 받아들이기도 어렵다는 암 선고가 내게는 복음이 가진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너무나 귀한 기회가 됐다. ‘전능자가 오셨다가 그냥 가시지 않고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복음의 능력’이 죽음 앞에 선 나에게 그대로 임했다.

나의 마음에는 어떠한 원망도, 어떠한 염려나 두려움도 없었다. 복음의 능력은 죽음의 두려움을 삼키고 나에게 큰 기쁨과 평강이 흘러 넘치게 했다. 그리고 사도행전 20장 24절 말씀 앞에 서게 하셨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됐고, ‘복음’과 ‘공동체’를 위해 나의 생명을 드리겠노라는 결단의 시간이 됐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폐암을 완치시켜 주셨고, 나는 더욱 큰 확신 가운데 복음을 선포하게 됐다.라고 간증한다.

이렇게 복음에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조차도 삼키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복음의 능력이 임한 사람을 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것이다.

 

김성로목사는  부활이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확실한  증거라는 성경의 근거를 사도행전 17장 31절에서 찾고 있다. 왜 부활만이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가 되는가?

 

인간의 죽음은 남녀노소, 시대, 문화, 가난한자, 부한자를 망론하고 인간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최고의 절망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인간의 가장 큰 문제이며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그런데 만약 완전한 죽음에서 부활 승천한 사람이 있다면 이 분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행 17:31)


여기서 정하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자신을 '인자'로서 언급하신 것 같이 바울도 “정하신 사람으로 표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한다. 본래 심판주는 초월적이며 위엄과 권세를 가진 하나님을 나타내는데 본절에서는 심판주를 사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후반절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이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엄연히 역사적 사실이며 이는 곧 예수께서 심판주(하나님)이심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사도바울의 기독론과 구원론을 나타내고 있는 변증적 설교임을 보게 된다.

 

당시 철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철학가들과 이만가지 이상의 신을 섬기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확신있게 부활의 증거를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변증에서 가장 먼저 수반되어야 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미나 속죄의 원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이 자랑되는 것이 이방인의 사도 바울을 통해서 보게 된다. 사도행전 1 7장 바울의 변증설교는바울이 이방인들에게 향한 기독교의 대표적인 변증적 설교의  모델이 되는 구절 임에 틀림없다.

 

김성로목사는 한국 교회의 기독교 변증의 오류 중에 하나가 전달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즉 부활의 확증 없이 전제된 믿음을 근거로 십자가 사랑을 증거하다 보니 온전한 주 되심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며 왜 부활이 강조되어야 하는지를 가슴 터지게 주장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이 확증되지 않은 십자가의 사랑 가지고는 초대교회 신앙인들의 삶처럼 살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김성로목사는 결코 십자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 확증된 믿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사도바울이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가 다시 십자가 사랑의 전달자가 된 것처럼 말이다.

 

 

      3. 변증학적 관점에서 무지하고, 역사성을 무시한 신학적 무지의 사람들 


결론적으로 정이철목사가 주장하는 “성도의 믿음은 아무 증거를 보지 못하여도 믿어지는 것이 믿음이며 그 믿음의 내용에 기꺼이 순종하게 되며 이 믿음을 주는 것이 성령의 사역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 변증학적인 관점에서 무지한 주장이며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역사적 사건의 개념으로 바라보지 못한 역사성을 무시한 신학적 무지라고 할 수 없는 괘변이며 기독교의 복음의 본질을  무시하는 주장임을 보게 된다.

 

기독교의 본질적인 믿음은 사실을 사실대로 믿는 것이며 그 사실을 바탕으로 신앙이 형성되는 것이다. 즉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완전히 속죄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시며 진정한 그리스도(구원자) 나의 주인임을 고백하며, 종말론적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것을 기독교 신앙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정이철목사는 “성도의 믿음은 아무 증거를 보지 못하여도 믿어지는 것이 믿음이며 그 믿음의 내용에 기꺼이 순종하게 된다. 이것이 믿음을 주는 것이 성령사역이다.”라는 주장안에는 믿음의 본질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구원론의 심각한 부재가 드러난 주장이면 정목사는 한국 교회목사와 한국 교회 믿음을 점검할 것이 아니라 본인의 믿음 부터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할 것이다. 바른믿음이 아니라 혹 다른믿음을 증거하고 있는지 검증해야 할 것이다.

제자는 제자를 낳고 생명은 생명을 낳게 되어 있다. 독수리는 독수리 새끼를 낳고 참새는 참새 새끼를 낳는다. 정이철 목사는 지금까지 무엇을 낳았는가? 십자가를 자랑하고 부활을 증거하는 성도와 공동체가 있는가? 
만약 그런 성도들이 있다면 유트브를 통해 공개해 주길 바란다. 정이철목사가 주장하는 다른 복음으로 복음의 증인들이 나온다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정이철목사의 문제만이 아닌 정이철목사의 괘변과 왜곡 편집된 주장을 지지하는 목회자와 신학박사들도 문제다.

정이철목사의 주장만 자세히 읽어봐도 왜곡 편집된 괘변인지 확실히 들어나는데 왜 분별하지 못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무지하든지? 아니면 복음이 가리워 진 것이다. 정이철목사는 확실한 검증없이 김성로목사와 춘천 한마음교회를 사악한 이단이라고 단정했던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할 것이다. 

우리 남침례교단은 이 사태에 대해 현재 교단 신학박사들과 목회자들이 철저히 규명하고 있으며 만약 정이철목사의 주장이 왜곡 편집된 근거없는 주장이라면 그에 따른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차후 정이철목사의 왜곡되고 무지한 믿음과 성령의 관계 즉 성령론과 자의적이며 자기 도취적인 성서해석에 대해 개혁주의 성경해석에 입각한 방법으로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춘천 시골 우사를 개조하여 시작된 교회, 화려함이나 조직 시스템, 양육 프로그램 없이 오직 14년을 무식할 만큼 복음 하나로만 승부한  한 무명의 목사를 통해 전 세계적에 춘천 한마음교회를 통해 신 사도행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김성로목사의 고백처럼 포스트 모던이즘, 상대주의 문화속에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시대 교회가 살 유일한 희망은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독특한 교회 행정 시스템이 아니라 오직 초대교회 사도들이 생명걸고 전했던 십자가와 부활 즉 복음만이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유일한 길이며 온전히 복음으로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세워진 교회만이 이 땅에 교회가 살 길 임을 믿는다.이 땅에 다시 성령의 권능으로 가슴터지게 십자가를 자랑하고 부활을 증거하는 복음의 증인들이 일어나야 할 때이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애틀랜타 뉴에덴 침례교회
담임목사 이재위
[이 게시물은 CKSB님에 의해 2016-10-25 06:28:52 게시판에서 이동 됨]

Comments

김한길 2016.10.14 03:16
관리자 목사 님.. 제가 drag 했는데 안됩니다. drag 부탁 드립니다.
원글은 여깁니다. http://ikccah.org/index.php?mid=board_pjuB87&document_srl=5792
CKSB 2016.10.14 16:11
할렐루야!
목사님. 고쳤습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김한길 2016.10.17 02:30
목사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제가 drag 잘 못하니 .. 수고 부탁 드립니다
이를 통하여 억울하게 이단성으로 몰린 김성로 목사를 도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형제 사랑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김성로 목사에겐 이단성이 하나도 없습니다
완전 장로교 정이철의 억지, 조작, 거짓말 입니다.
이런 정j이철의 거짓말이 지난 1년 동안 SNS에 난무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김성로 목사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김한길 2016.10.17 02:50
박 목사님.. 이 글도 7일-10일이 지나면 이단자료실로 옮기셔도 됩니다.
날자 별로 옮겨 주십시요. 나주에 자료로 쓰기 위함입니다.
앞으로도 이재위 목사의 분석글이 계속 나오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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